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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11> 돌상 앞의 한국인 ⑤ [중앙일보]
돌잡이는 꿈잡이
오랜만에 돌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색동옷과 복건을 쓴 돌잡이를 보면서 처음으로 거기 의젓하게 앉아 있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았다. 눈물이 흔해진 나이라 그런지 경사스러운 날에 하마터면 눈물을 보일 뻔했다. 색 바랜 사진 한 장. 그나마 전쟁으로 불타버린 내 돌 사진이 생각나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모든 것이 변했는데 장례식에 가도 곡소리를 들을 수 없고 결혼식장에 가도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세상인데 돌잡이만은 옛날 모습처럼 돌상 앞에 앉아 있다. 하늘의 별들이 일제히 내려와 앉은 것 같은 돌상차림이 아닌가.
그래 나도 돌상 앞에 저렇게 앉아 있었겠지. 아주 작고 반짝이는 그 많은 것들, 이름은 몰랐지만 분명 그것은 붓이고 책이고 무지개 같은 활이었을 거야. 무한대의 기호 모양을 한 것은 장수를 한다는 무명 실타래고 진주알같이 쌓여 있는 것은 만석꾼이 되라는 흰쌀이었을 것이다. “얼른 잡아! 저게 다 너의 꿈인 거야. 좋은 걸 골라 잡기만 하면 돼.” 누군가가 속삭인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고 현실 속에서 내 기억을 일깨워 주신 것은 어머니의 목소리다. “네가 돌상에서 맨 먼저 잡은 건 붓이었단다. 그리고 낡고 헤어진 천자문 책을 집으려고 했지.” 그때의 말을 나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흡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미소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부귀영화의 쌀과 돈, 권력의 활을 잡지 않고 붓 한 자루 잡았던 나를 기뻐하시고 칭찬해 주신 어머니, 남의 나라처럼 그냥 ‘퍼스트 버스데이’라고 부르지 않고 유별난 돌잡이 풍습을 만들어 준 나의 조국, 그런 어머니의 아들과 그런 한국 땅에 태어난 것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돌날 붓을 잡은 나는 정말 평생을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왔고 칭기즈칸도 아인슈타인도 없는 땅에 태어났으면서도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지금 한국인 이야기를 쓰고 있다.
잠시 흐려졌던 눈이 맑아지자 돌상 위에 놓인 낯선 물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저건 컴퓨터 마우스 아닌가.” “예 맞아요. 빌 게이츠가 되라고요.” 돌잡이 아빠는 IT 벤처회사의 간부사원이었다. 의아해하는 내 표정을 읽은 그는 변명을 하듯 말을 이었다.
“요즘 마우스는 명함도 못 내지요. 박찬호가 뜨면 야구공, 박세리가 이길 땐 골프공이 오르지요. 뭐 사라 장이 한국에 와서 연주를 하면 장난감 바이올린까지 등장한답니다. 그런데 요새는 스케이트래요. 유나 킴, 아시잖아요. 김연아말이에요.”
“어차피 책을 잡아도 판검사 되라고 법전일 테고 CEO 되라고 경영책일 텐데 무엇이면 어떠냐. 나처럼 붓을 잡지 않아도 세계에서 제일 가는 사람이 되거라.” 폰 카메라 같은 것으로 누군가 백 년 전부터 돌상을 찍었더라면 아마 한국인의 다양한 꿈 사전이, 시대를 읽는 욕망의 역사책이 생겨났을 것이다. 어느 화가가 말한 것처럼 한국의 밥상을 부감촬영하면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밥상의 테두리는 액자가 되고 오방색 음식 그릇들은 추상화가 된다. 더구나 돌상은 먹는 음식이 아니라 꿈을 담은 물건들이니 우리 미래를 검색하는 데이터 베이스의 창처럼 눈부실 거다.
예나 지금이나 돌상 앞에 앉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미래의 비전을 잡는 한국인의 모습, 그 시작 속에 우리 문화를 읽는 암호가 숨어 있다.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돌잡이 풍속과 비교해 보면 알 것이다.
첫째는 상(床)문화다. 한국인의 일생은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아니라 ‘돌상(床)에서 제상까지’다. 그 사이에 초례청, 결혼상이 있고 환갑상이 있다. 그런데 일본은 상이 아니라 다다미방에 돌잔치의 물건을 진열한다. 한국에서는 절대로 돌상에 오를 수 없는 칼(사무라이의 칼잡이 문화)이나 주판(상인들 문화) 같은 것들이다.
둘째는 앉는 문화다. 상 앞에서는 서도 안 되고 누워도 안 된다. 한국의 좌식문화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앉아서 받는 돌상이다. 일본의 돌잡이들은 평생 먹을 양식을 상징하는 떡(잇쇼모찌)을 짊어지고 다다미 위의 돌차림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아이가 걸어가는 쪽 물건으로 미래를 점친다.
셋째는 잡는 문화다. 돌잡이는 꿈잡이다. 한국인은 꿈을 꾸지 않고 손으로 잡는다. “잼잼”과 “곤지곤지”의 애들 놀이에서 쇠젓가락으로 콩알을 집는 손기술까지 모두가 돌잡이의 ‘잡는 문화’로 상징된다. 같은 젓가락 문화권이라고 해도 일본에는 돌잡이의 개념이 없다. 걷지 못하는 아이들은 돌떡(잇쇼모찌)을 발로 밟게 한다.
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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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7> 돌상 앞의 한국인 ① [중앙일보]
나를 지켜준 시간의 네 기둥
인터넷 블로거 뉴스에 아사다 마오는 그 사주(四柱) 때문에 김연아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두 선수는 모두 경오(庚午)년 백말띠이고 달수는 갑신(甲申)과 을유(乙酉)이다. 태어난 날은 계유(癸酉)와 계사(癸巳)인데 20일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계(癸)의 일간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연아는 갑(甲)목을 손과 발로 쓰고 마오는 을(乙)목을 손과 발로 쓴다는 거다. 더 이상 사주풀이를 들으려 하지 말자. 김연아가 이긴 것은 운을 타고 나서라는 말밖에는 되지 않으니 말이다.
궁금한 것은 그 블로그 뉴스가 베스트에 뽑히고 클릭 수가 만만찮다는 데 있다. 하기야 좋다는 사주 날짜 받아놓고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는 세상이니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원래 사주팔자란 태어난 해(年) 달(月) 날(日) 시(時)를 ‘네 기둥’(四柱)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두 자로 된 간지명(干支名) 여덟 글자(八字)로 나타낸 말일 뿐이다. 그래서 점복과 관계없이 한 개인의 차이성을 나타내는 ID라고 생각하면 된다.
유럽에서는 중세 때부터 이미 생년월일을 개인의 신분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여겨왔다. 이름과 주소는 바뀌어도 생년월일은 일생 동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는 언젠가는 생년월일 숫자를 시민 전체가 등록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기뻐해야 할지 서러워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예언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한국이다. 사주팔자를 시(時)만 빼고 숫자로 고치면 우리가 무덤까지 갖고 갈 주민등록증 번호의 앞자리 여섯 숫자가 생긴다. ‘사주팔자’가 ‘삼주육자’로 바뀐 셈이다.
사주의 여덟 글자가 한국인에게 각별한 의미를 띠게 된 것은 그만큼 운명론자들이 많아서가 아니다. 이름도 남이 지어준 것이고 태어난 장소도 이사를 가면 그만이지만,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사주 날짜만은 누가 뭐래도 자기만의 것이다.
그런데 그 정체성마저 호적부에 오르는 순간 위태로워진다. 왕의 시간, 황제의 시간, 국가의 시간에 흡수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이 연호(年號)라는 것이요, 기원(紀元)이라는 특수 문자다. 실제로 내 생일은 음력과 양력 그리고 호적에 등재된 것으로 지리멸렬되어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출생 당시 호적에는 ‘소화(昭和) 8년생’으로 기록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해방된 뒤에는 단기, 근대화 이후에는 서기로 표기 방식이 달라진다. 아마 북한 땅이었다면 내 출생일은 주체 23년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역사의 시간, 카이저들의 시간이라는 게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깃발의 시인 청마(靑馬) 유치환은 시 ‘출생기’에서 “융희(隆熙) 2년, 나를 잉태하신 어머니”라고 썼다. 같은 한국 사람인데 한 사람은 조선왕조 마지막 임금 순종(純宗)의 연호로, 또 한 사람은 일본제국의 ‘천황’의 연호를 탯줄처럼 감고 태어난 것이다. 작가 이병주는 다섯 개의 이름을 갖고 살았던 한국 젊은이의 비극을 소설화했지만, 그보다 더한 것이 융희, 소화, 단기, 서기로 그 명칭이 바뀌어 간 단절과 혼란의 역사라 할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시간을 개인 사주의 간지로 바꾸면 사정은 달라진다. 융희 2년은 정미생(丁未生)이 되고 소화 8년생은 계유(癸酉)생으로 변한다. 어지러운 역사 속에서 “그래도 계절만은 천년을 다채하여 지붕에 박넌출(넝쿨) 남풍에 자라고 푸른 하늘에 석류꽃 피 뱉은 듯 피어”의 ‘출생기’의 한 시구절 같은 “그래도”의 시간, “천년의 다채한 시간” 내 생명과 자연과 우주의 시간이 열린다. 아무리 낡고 황당한 주역이나 당사주책(唐四柱冊)이라도 신이라고 일컫던 ‘천황폐하’보다 내 띠인 닭이 먼저다. 아니다. 거기에는 카이저의 절대 권력도 틈입할 수 없는 나의 시간, 하늘의 시간이다. 아무리 소화 8년 황국신민으로 포장하려고 해도 나는 태양보다 먼저 어둠 속에 빛을 토하는 닭띠 계유생으로 이 땅에 태어났다. 경오년생 김연아가 국적이 다른 아사다 마오와 은반 위에서 머리칼을 나부끼며 백마처럼 달려오고 있는 시간, 둥글게 둥글게 순환하는 띠의 시간, 영원히 지속하는 시간 그 고리 위의 네 기둥이 한국인들을 지켜왔다.
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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