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지난 2008시즌이 들어가기 전 모 구단 전력분석팀이 작성한 이범호의 타격 그래픽이다.
이범호가 홈 베이스에서 떨어진 채 오픈 스탠스 경향을 보이고 있는 만큼 스트라이크 존 양 사이드 쪽에 약점을 보인다는 것이 주요 내용.
리포트를 작성한 전력분석원은 "(전력 노출이 될 수 있어) 자세한 설명은 어렵지만 지난 시즌을 거치며 스트라이크 존 사이드 공략 부분에선 적지 않는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변함 없이 약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코스가 있다"고 했다.
그가 지적한 코스는 바깥쪽 높은 존이었다. 이범호는 바깥쪽 높은 코스로 빼는 빠른 공에 헛스윙이 많은 스타일의 타자다.
이범호는 밑에서 위로 퍼 올리는 스윙을 갖고 있다. 이른바 이와 같은 어퍼 스윙은 방망이 나오는 궤적상 높은 존에서 움직이는 공에 약점이 생긴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범호가 최근 한창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홈런을 때려내고 있는 코스 때문이다.
이범호는 16일 멕시코전과 8일 중국전서 홈런을 때려냈다. 두개의 홈런 모두 바깥쪽 높은 쪽으로 들어오는 공을 잡아당겨 큼지막한 타구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이범호가 그새 자신의 스윙을 바꾼 것일까. 정답은 '아니오'이다. 이범호의 스윙 궤적은 변함 없다. 타격 매커니즘만 놓고 보면 여전히 바깥쪽 높게 들어오는 공에 헛스윙이 더 어울린다 할 수 있다.
이범호의 달라진 모습은 우선 집중력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범호는 16일 경기 후 "직구로 승부를 걸어올거라 생각하고 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상대와 수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는 뜻이다. 확실한 노림수를 갖고 있는 덕에 생소한 투수들과 상대에서도 높은 적중률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집중력은 머릿싸움을 돕는 최고의 도우미다. 상대가 어떤 승부를 걸어올 것인지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높아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높은 쪽 빠른 코스에 부담을 갖고 있는 이범호 입장에선 아무리 직구를 예측한다 해도 지금처럼 쉽고 빠르게 대응하긴 어렵다.
타격 그래픽에서 알 수 있 듯, 이범호가 약점을 보이고 있는 높은 코스는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이 형성되는 지점이다. 치기 좋은 쪽이 아니라 유인당하기 좋은 부분이라는 의미다.
직구란 걸 알고 스윙이 나가더라도 기존의 타격과 같은 방식으로라면 크게 헛치거나 빗맞은 타구가 나올 확률이 높다.
자료를 제공한 전력분석원은 이에 대해 "자신의 약점인 높은 코스의 공을 때려내 멀리 보낼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은 것 같다. 말로 설명하기 힘들겠지만 어떤 실마리를 찾았다는 자신감이 그의 스윙에서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시즌 중에도 이런 모습을 보일때가 있다. 이범호가 홈런을 한창 몰아칠 때가 있는데 바로 지금과 비슷하다. 최상의 타격 페이스와 집중력이 더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범호의 약점은 완전히 극복된 것일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찾아낸 것을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타격은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타자들이 흔히 말하는 "감이 왔다"라던가 "밸런스가 좋다"는 말 속엔 머리는 알지 못하지만 몸이 느낀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바꿔말하면 작은 변화에도 그 해법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몸의 기억은 머리의 기억보다 망각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최근 이범호의 타격이 빠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며, 지금의 자신감이라면 당분간 그 페이스가 꺾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다른 구단의 전력분석원은 "이범호가 현재 가장 좋았을 때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데 동의한다. 시즌 중의 이범호는 한번 좋은 페이스를 타면 상당기간 그 감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우리가 남은 WBC 기간 동안에도 이범호의 타격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이유다. 또 이범호가 지금 찾은 해법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그는 지금보다 더 무서운 타자가 될 것이다.
Posted by yellowsubmarine